화가 모딜리아니
파리의 벨 라세즈 공동묘지에 있는 모딜리아니의 묘비에는 이탈리아어로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습니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화가. 이탈리아 리보르노에서 1994년 7월 12일 출생했고 1920년 1월 24일 파리에서 죽다. 이제 바로 영광을 차지하려는 순간 죽음이 그를 데려가다.
그 밑에는 만삭의 몸으로 그를 따라 아파트 6층에서 투신 자살한 모딜리아니의 아내 쟌느의 묘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습니다.
쟌느 에퓨테른느, 1889년 4월 6일 생. 1920년 1월 25일 파리에서 죽다. 모든 것을 모딜리아니에게 바친 헌신적인 반려.
모딜리아니는 만 34년 6개월 동안 살았고, 그가 죽은 다음날 쟌느도 죽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짧은 인생을 살다 간 화가였으며, 가난했고 술을 좋아했고 마약에 중독되기도 했습니다. 모딜리아니를 주인공으로 만든 '몽파르나스의 등불(Les Amants de montparnasse, 1957)'은 영화화 되어 우리나라에서도 방영되었습니다. 1978년에는 TBC에서 방영되었고 1988년에는 KBS에서 '몽파르나스의 연인들'이란 타이틀로 방영되었습니다.
모딜리아니의 성장
모딜리아니의 조상은 유태인 이었으며 프로방스, 이탈리아 지방, 또는 발칸 제국으로 떠돌게 된 세파르당이었습니다. 그의 조부는 로마에서 포도 농사를 위해 땅을 구입했는데, 유태인은 토지 소유가 금지되었기에 리보르노로 이주했다고 합니다. 삼남 일녀의 막내로 태어난 모딜리아니는 자유로운 사상과 교양을 몸에 익힌 어머니의 교육과 애정으로 성장했습니다.
그가 미술을 하게 된 계기는 리보르노의 화가였던 미케리의 화실에서 미술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어려서 늑막과 장티푸스를 앓고 미술을 배우면서 공부보다는 그림과 독서에 열중하게 됩니다. 17세가 되면서 다시 폐질환이 재발하였는데, 요양을 위해 어머니는 아들과 나폴리, 카푸리 등을 여행하면서 로마와 피렌체 등지의 미술관을 여행했습니다. 이 여행을 통해 아메데오는 거장들의 작품을 통해 깊은 감명을 받게 되었고, 작품 창작에 대한 의욕과 정열을 실감하게 됩니다.
8세가 되자 아메데오는 피렌체의 미술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시를 좋아해서 단테, 레오발디, 렘보 등의 시를 암송했다고 합니다. '에콜 드 파리’는 세계에서 예술을 위해 몽마르트르 언덕으로 모여든 예술가들을 칭하는데, 아메데오가 몽마르트르 언덕에 온 것은 1906년 22세 때였습니다. 여기서 피카소, 살몽, 쟈콤 등과 어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모딜리아니는 방랑이 시작되며 몽마르트와 몽파르나스의 카페드를 전전하며 술과 하싯슈(인도산 대마)에 빠져들게 됩니다. 당시 마약(환각)의 대중화가 일반적인 화제이기도 했었는데, 이러한 현상은 큰 원인으로는 초기자본주의의 물질적 성정과 개인주의 붕괴가 급히 진전된 데 원인이 있다고 합니다.
모딜리아니의 예술
처음엔 조각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합니다. 어린시절 어머니와 함께 여행했던 로마와 피렌체 등지의 미술관은 그의 예술성을 눈뜨게 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14세기 시에나의 조각가였던 카마이노의 영향은 그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후 1909년 브랑쿠지를 만나고 조각에 대한 열정이 타올라 3년간 여러 점의 조각을 제작했습니다. 하지만 힘든 노동이 필요한 조각 작업에 그의 병들고 연약한 몸은 견디기 어려웠고, 이후 회화 작품에 몰두하게 됩니다.
30세에 만나는 영국의 여류 시인 비아트리스 헤스팅은 모딜리아니의 아내입니다. 이때부터 그의 미술은 한층 더 확고해게 되며 기운차고 명석한 것이 되었지만, 술에 취해 폭행을 일삼는 남편을 견디지 못한 비아트리스는 영국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34세때는 니스에서 딸 쟌느 모딜리아니를 낳아 준 쟌느 에퓨테른느를 만나게 되고 그의 최상의 반려자가 되었습니다. 모딜리니아는 1920년 병세가 절망적으로 약화되며 1월 24일 오전 8시 50분 이탈리아 말로 다음과 같이 남기고 숨을 거둡니다.
카라 이탈리아(그리운 이탈리아)
주요 작품
- 자화상. 유일한 작가의 자화상. 1919년. 상파울루 대학 현대 미술관 소장
- 유태인 여자. 조각과 회화 사이의 과도기 시절 작품. 1908년. 파리 개인 소장
- 젊은 여인의 얼굴. 23세때 그린 작품으로 파리 정착 이후 첫 공식 작품. 1908년. 프랑스 개인 소장
- 젊은 하녀. 애환의 얼굴들을 즐겨 그렸다. 1919년. 버팔로 앨브라이트 녹스 아아트 갤러리 소장
- 큰 모자를 쓴 쟌느 에퓨테른느. 그녀를 만나 안정적이고 독자적인 표현 양식이 만개한다. 1917년. 파리 개인 소장
- 푸른 옷의 소녀. 이웃의 하층 계급 어린이들을 좋아했다고 한다. 1918년. 파리 개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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