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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호> 인생의 고통이란 살아 있는 그 자체다.

by 스집사 2023.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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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밤의 카페 테라스>

밤의 카페 테라스 LE CAFE LE SOIR

1888 9 캔버스 유화. 오텔로 크뢸러 뮐러 미술관 소장

 

빈센트  고호(Vincent Van Gogh)

빈센트 고호는 1853 네덜란드의 노드 브라반트의 작은 마을 흐르트 츤데르트에서 출생했습니다. 한국인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화가 중 하나로, 서양 미술 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입니다. 16세에 화랑 점원으로 처음 일을 시작하였고,  서점, 교사, 전도사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였습니다. 

 

화가가 되기로 한 것은 27세였고, 4살 차이의 동생 테오가 유일한 후원자였습니다. 둘은 평생 동안 무려 668통의 편지를 서로 주고받았고, 생활의 기쁨과 고단함, 작품에 대한 집착과 연민 등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고호의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일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때문이며, 화가로 지낸 10년 동안 매일 작품을 그리면서 일상에서 눈을 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고호의 어린 시절과 성장

20세 때 파리 구필 화랑의 런던 지사로 파견되어 일하였고 하숙집 딸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반 고호는 지나칠 정도로 신경과민이었고 고지식한 성격 탓에, 하숙집 딸과의 실연 후 망가진 상황에서 화가의 길을 시작했습니다. 1880년 브류셀에서 데상을 공부하면서 양친과 함께 에텐에 머물렀던 반 고호는 조카 케이에게 또다시 실연을 당하게 됩니다. 헤이그로 떠난 그는 거리에서 크리스틴이라는 창녀를 만나 애정을 쏟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술주정뱅이에 임신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반 고호는 1887년 인상파의 그림에 빠지게 되었고 피사로, 드가, 고갱, 시냑 등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또한 코르몽 화실에서 툴루스 로트렉, 에밀 베르나르와 사귀게 되었습니다. 그는 파리의 거리, 초상화, 꽃들을 그렸고 페르 탕기 화랑에서 모네, 귀오멩, 시냑 등의 그림 전시회에 함께 참여하기도 하였습니다. 일본 판화에 심취한 고호는 히로시게의 작품인 <비 내리는 다리>와 <나무>를 모사하기도 했으며 인상파 점묘화법의 기교를 도입하고 피사로와 모네, 귀오멩의 그림에서 빛을 다루는 방법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1888년 프로방스로 간 고호는 과수원, 아름다운 여인, 알제리아 군인들, 주정꾼 등을 그렸습니다. 갈대와 캔버스로 그림을 그리고, 윤곽미와 밝은 빛, 순수한 색깔, 주홍빛 붉은색, 프러시아풍의 청색, 에메랄드 빛깔의 녹색, 태양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성스러운 황색 등을 발견하고 작품에 적용했습니다. 

 

귀를 자른 자화상

해변가 생트 마리에서 많은 작품활동을 하였으며 <아를르의 거실>과 같은 우수한 작품에도 불구하고 그의 경제적 생활은 어려웠습니다. 먹을 것도 충분치 못했으며 환각과 위기 때문에 고통을 겪으며 죽음에 대한 생각이 그를 따라다녔습니다. 종말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에 작품 활동을 서둘렀으며 작품 활동 가운데서만 절망에서 헤어날 수 있었습니다. 1888년 고갱과 만나게 된 두 사람은 상극되는 성격 탓에 관계가 나빠지게 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날 밤 토론 중에 고갱의 얼굴에 거울을 던지기도 하고 거리를 걷고 있었던 고갱을 면도칼을 들고 따라가기도 했습니다. 고호는 집으로 도망갔지만 면도칼로 자신의 귀를 잘라내고야 맙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난 후 환각 발작증이 재발하고 있었고 그의 외모와 성격, 변덕 등으로 사람들로부터 고립되었습니다. 하지만 계속 그림을 그렸으며 책을 일거나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는 1889년 5월 3일 프로방스의 생 레미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병원에 머무르는 동안 150점에 달하는 많은 작품과 스케치를 그렸습니다. 

 

1890년 치료를 위해 파리로 오게 되는데 담당 의사였던 가체트는 그를 치료하면서 또한 모델이 되어 주기도 하였습니다. 보리밭을 걷다가 들어간 한 농가 퇴비 더미 뒤에서 권총으로 자살 시도를 하게 되고, 이틀 후에 급히 연락받고 달려온 동생 테오의 앞에서 37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게 됩니다.

 

인생의 고통이란 살아 있는 그 자체다

 

인생의 실패를 느껴온 고호

고호의 유명한 2천 여점의 작품들은, 조울증을 앓다가 37세에 자살하기 전, 10년 동안 그려진 것입니다. 그의 사후 명성은 힘들었던 그의 생애에 대한 보상일지도 모릅니다. 그는 태어나기도 전에 어머니의 뱃속에서 사망한 형의 이름 ‘빈센트’로 살아간, 결핍의 운명을 지고 태어난 인물일지도 모릅니다. 사랑도 미망인이나 애인이 있는 여자, 창녀 등 결핍된 여성이 대상이었으며 그의 지나친 집착과 연민은 불안감과 고독을 낳고 자신의 귀를 잘라버리기 까지 했습니다.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색조를 띤 고흐의 그림에서, 말할 수 없는 슬픔의 뒤안길이 엿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의 인생은 불안정함과 고통과 비극의 삶이었으며, 루소나 보들레르와 마찬가지로 그의 인생이 실패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괴로움과 싸우기 위해 종교, 인도주의, 예술에 몰두했으며 예술로 자신을 승화시켰을 때 좌절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반 고호의 그림은 완전히 의식적인 화가의 그림이었으며 건강한, 헌신적인 창조자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고호와 해바라기

고호는 네덜란드에서 파리로, 또 파리에서 아를르로 태양을 향하는 집념은 해바라기를 닮아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해바라기의 형상이나 색채, 그리고 해를 향하는 성질은 고호의 내면적 원형이라고 할 수 있고, 이는 고호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강렬한 생명력을 해바라기를 통하여 본 것입니다.

빈센트 반고흐
< 열두 송이 해바라기와 꽃병>

<열두 송이 해바라기와 꽃병>

Vas with Twelve Sunflowers. 1888년경. 캔버스 유채. 프랑스 부슈뒤론의 아를에서 그림. 독일 뮌헨의 바이에른 주립회화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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